한참 잊고 있었던 친구를 만났다.
여행은 늘 '설레임'이라는 웃지못할 느낌을 준다고 보통은 말한다. 글쎄. 그 말을 어디서부터 믿어야 할지, 형사가 수사를 하듯이 집요하게 왜, 어떻게 그런 말을 생각할 수 있었느냐고 묻고 싶다. 나름대로 여행을 좋아한다는 내게는 이해되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여행을 출발하기 전 짐을 꾸릴 때부터 점점 두려움이 슬슬 발바닥부터 치고 올라와 급기야 출발 전, 배낭을 메고 신발끈을 멜 때는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오는 문장이 있었다.
‘저 아무래도 여행은 다음에 다녀와야할 것 같아요’
정말 그랬다. 설레임보다는 흥분이었다. 여행은 나에게 있어서 두려움이었고, 그 두려움을 이겨내는 ‘사실 아무것도 아닌 걸’이라고 다시 되뇌이는 자신감의 일종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혼자 서울에서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까지 다녀오기도 했고, 영어 한마디 못하면서도 유럽일주도 무사히 마쳤다.
사실 전작 ‘비포선라이즈’를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 집으로 가는 도중에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두 남녀가 비엔나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을 하룻밤의 사랑을 엮어가는 영화라고 극히 간단한 정보를 가지고 있던 바였지만, 곧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여행은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거든, 당신이 나가면 그 무언가를 툭하고 발 앞에 던져줄꺼야’라고 꿈꾸듯 말하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할까.
물론 사람마다 여행을 이용하거나 추구하는 방향은 다르다. 하지만 꿈을 꾸고자 떠나는 여행이란, 어린아이가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믿음과 비슷하지 않은가? 예를들어 조금더 확률을 높여봐도, 목적지 없는 여행길을 떠나 고속버스의 옆자리에 늘씬한 미녀가 안기를 바라는 것과, 그 미녀가 ‘어디까지 가세요?’ 라고 물어보고, 우연히 목적지가 같아 길안내까지 받으며, 그날 밤을 함께 보낼 수 있는 것이겠지. 한강에서 사금을 찾는게 쪼오오그음 더 빠를 듯 싶다. 그만큼 그것은 외로운거다.
나는 여행이란, ‘모두 픽션이고 그 픽션 속에 재미있는 애피소드들과 주인공들의 대사를 쓱쓱 골라내어 맛있게 먹는 역할’이라고 자위하며 빠져들었다. 그러나 멋진 대사들과 비엔나의 배경(추후 비엔나를 가서 확인했지만 영화 촬영지를 찾지 못했다 -_-)은 내 마음을 흔들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으니, 지금도 영화 고르는 눈이 그다지 없는 걸 보면 당연한듯 싶다. 크~
그 후, 대략 7년가량이 지난 듯 싶은 지금 2004년에 ‘비포선셋’이라는 제목을 내걸고 또 다시 내 앞으로 성큼 발을 내밀었다. ‘이 영화는 무조건 극장에서 보리라’라고 말이 무색하게도 7년 전과는 말도못하게 달라진 정보통신의 발달 덕택에(?) 어둠의 경로를 통하여 내 손에 들어왔다. 정말 누군가 똥꼬에 불을 지른 듯한 뜨거움을 맛봤다. 덕택에, 오디오 스피커를 이용한 그럭저럭한 5.1채널 음량과 19인치 모니터 때문에 서울 변두리 비디오방 수준은 되어 집에서 감상하기가 그닥 불편하지 않은 점도 한몫했다. (내년에는 필히 프로젝터를 구입하리라. 으득~!)
비포선셋의 내용은 별다를 게 없다. 많은 이야기를 나눌 뿐이지 수많은 명소로 멋들어진 앵글을 보여주지도 않으며 시선을 끌만한 특이한 장치도 보이지 않는다. 단지 제시와 셀린느와의 만남이라는 설정과 그들이 나누는 대사에 주목한다. 한참동안 잊고 있었던 친구를 다시 만난 기분이랄까? 특히 영화초반, 카페에서 대화하는 장면은 관객이 실제로 제시와 셀린느가 되어 그들과 대화하는 듯 했다. 누구나 ‘비포선라이즈’를 보았던 사람이라면 제시와 셀린느에게 ‘너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라고 묻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어느 영화사이트의 비평에서는 ‘다큐멘터리적 분위기를 풍긴다’는 말이 오가기도 했는데 상당히 공감 가는 부분이었음을 인정한다. 우리가 이 두 작품에 열광하는 이유도 그들이 생각하는 설명과 묘사를 교묘히 대화로 이어간다는 영화의 설정에 끄덕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여튼 이들 둘의 언변은 놀라울 따름이다. 외국영화에서 종종 보이는 이런 대화의 주제는 지금 내 주변의 사회에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좀 슬프다. 그러한 대화를 이끌어 갈만한 능력도 없을뿐더러 앞으로 노력해서 될런지 모르겠다. 의식수준의 차이일까. 하긴. 프랑스는 놀고먹어도 실업자에게 실업수당도 지급해준다는데. 이제 먹고 살 궁리나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비교해보면 궁상맞기도 하다. 아무튼 어리버리한 나는 어려워 보인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어쨌든, 나에게 이 영화는 돌아온 옛 친구다. 그에게 지금껏 있었던 일과 속사정을 충분히 듣고 싶지만 아껴서 듣고 이해해야 한다. 함께 술을 마시거나, 길을 걷지 않아도 된다. 단지 공원의 벤치나 카페에 앉아 시덥잖은 이야기라도 나에게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
maksoju, 200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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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영화]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Before Sunrise, Before Sunset)
Tracked from 월풍도원(月風道院) - Delight on the Simple Life 2011/11/12 17:47 삭제해 뜨기 전 까지 하룻밤과 9년 후 재회를 그린 이야기. 비포 선라이즈 그리고 비포 선셋.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이 영화.이야기 참 많이 들었습니다.“아 정말 낭만적이야.”“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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